현재 우리가 입고 보는 옷들은 대부분 서양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대량생산된 규격이다.
모든 바지의 허리에는 고리가 있고 허리를 조절하려면 벨트를 사용한다.
이것은 서양에 의해 규격화된 것이지만 동양에서도 벨트는 고대부터 쓰였다. 어떤 면에서는 서양보다 더 특색 있게 발전한 동양의 허리띠는 어떤 것일까?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튜닉 형태로 덮어 입는 옷보다 좌나 우로 여며 입는 여밈옷이 발달했고 또 유목 민족의 영향으로 바지가 발달했다. 여밈 옷이 발달한 이유로는 뚜렷한 사계절로 인한 온도차로 여러 겹을 여며 입는 방식이 선호 된 것과 유교의 영향으로 신체를 단정하게 여미는 것을 미덕으로 본 것이 있다.
"창피하다"라는 말이 미쳐날뛸 창猖과 헤칠 피披
즉, 미쳐날뛰어 옷이 풀어 헤쳐지는 모습을 두고 한 말임에서
단정히 입는 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민 옷이 헤쳐지지 않도록 하는 허리끈은 필수였다. 실용적인 면에서 서양과 비슷하지만 동양에서는 사회적인 면이 조금 더 반영되어 있음이 그 차이점이다.
동양에서는 허리띠를 '요대'라고 불렀고 옥대, 금대 등 재료에 따라 혹은 첩섭대, 야자대 등 형태에 따라 구별되었다. 신분과 계급 등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화려한 장식의 허리띠가 발달했는데 왼쪽같이 다양한 장식을 늘어뜨린 띠꾸미개가 달려있기도 했고 오른쪽같이 금으로 테두리를 두른 후 길문을 새기기도 했다. 첩섭대의 경우 유목 민족들이 칼이나 숫돌, 약통 등 필요한 물건들을 몸에 매달고 다녔던 풍습이 장식화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조선의 왕이 착용하던 옥대 중에 '방형 각대'라고 하여 사각형으로 된 허리띠가 있었다.(신하들도 착용하였다) 이것은 더 이상 옷을 몸에 맞게 조이기 위한 역할이 아닌 어떻게 보면 오히려 불편할 것 같은 형태인데 장식적인 요소로서 허리띠의 제일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사각형의 안정된 형태가 질서와 권위를 상징했다고 하는데 오른쪽의 곤룡포에 방형 각대를 입은 모습을 보면 허리띠가 각져있어서 정말 더 그 권위와 강단,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눈을 감고 둥근 요대로 상상해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몸에 맞게 조여서 착용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옆구리에 요대를 고정할 수 있는 고리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후기가 되자 서양의 가죽으로 된 허리띠와는 달리 천으로 된 끈 형태가 널리 사용됐다. (1)과 같이 얇게 꼰 세조대가 두루마기의 겉에서 포인트 및 장식요소로 쓰였고 (3)과 같이 폭이 넓고 납작한 형태의 광다회도 사용됐다. 둘 다 매듭을 지어 길에 늘어뜨린 부분에 술장식이 달려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버클을 통해서 고정을 한데 반해 동양에서는 매듭이 자주 사용됐다. (2)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넓은 허리띠인 오비도 뒤쪽에서 리본 형태로 매듭을 짓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의 남녀 복식을 보면 시대에 따라, 계층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대체로 높은 허리선을 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의 유교와 불교, 도교 등의 사상들에서 조화와 균형, 단정함에 대한 추구가 있었기 때문에 허리선이 높으면 상체가 단정히 여며지고 고정되므로 매우 단정하고 겸손하다고 여겼다. 또 여성복의 경우 높은 허리선 밑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원단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로 동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진출로 인해 서구의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중국의 '양무운동', 조선의 '갑오개혁', 베트남의 '동경의' 등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채택된 것은 바로 복장이다. 대중들이 보기에 가장 빨리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의복이었기 때문에 서구식 의복이 채택되면서 서구화가 가속화되었다.
일본에서는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제국주의의 대열에 참여하지만 중국과 조선에서는 서구식 의복과 두발을 반대하며 기존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척화 세력이 크게 대두되면서 늦은 근대화가 식민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대의 전 세계적인 의류의 표준이 결국 서구 열강의 현대화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렇다고 동양의 것이 아예 지워진 것은 아니다. 서구의 전통의상도 현대의 의복과 비교해 보면 매우 다르다. 가장 단적인 예로 서구식 의복을 대표하는 정장 슈트 스타일도 16세기 오스만 제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오스만 제국의 의복이 반영되면서 여러 문화적 요소가 융합된 스타일이지 기존의 서구의 의복 스타일이 아니었다.
즉, 현대적인 의복 스타일은 '서구화'보다는 '서구의 현대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
서양과 동양의 벨트의 기원을 파헤쳐 보면서 알 수 있듯이 그 스타일은 각각 다르게 진화해왔지만 기본적인 의복 요소의 기능과 형태는 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쳐왔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의복은 이미 생명이 끝났다고 단언하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적 의복이 완결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또 새로운 융합과 문화적 영향을 통해 '다음 세대의 현대화'가 진행될 것이고
이제는 그 주체가 서양이나 동양 이렇게 단편적이지 않은 복합적인 '개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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