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Cold War)이 펼쳐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60년대의 "Space Race"이다.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불을 지피고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하면서 팽팽히 경쟁했다.
(이외에도 올림픽, 체스, 영화와 음악, 경제성장 등 다방면에서 대립했다.)
이러한 경쟁은 괄목할 만한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대중문화에 깊이 스며들었고 패션디자이너들은 미래주의적 디자인과 기하학적 형태, 금속과 비닐같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들은 "Space Age"라고 불리며 1960년대를 지배했는데 대표적으로 프랑스 출신의 André Courrèges와 Pierre Cardin이 있다.
옷은 아름다움과 착용감 만을 고려할 것 같은데 여기에 개개인들의 관심사가 반영된다는 것은 패션이 왜 일상에 가장 가까운 예술인지를 알려준다.
Pierre가 추구했던 "Unisex"의 개념은 70년대 여성운동과 함께 남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주어 "Androgynous Look"(Genderless)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Cardin은 적극적인 라이선스 전략으로 패션에서부터 가구, 자동차, 액세서리, 음식 등 다양한 제품군에 "Pierre Cardin"라벨을 붙이며 패션계에서 가장 많은 라이선스를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브랜드의 인지도가 올라간다고 해도 브랜드의 이미지와 무관한 제품들에 라이선스 사업을 펼친 결과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충성된 고객들조차도 "Pierre Cardin"로고를 기피하게 됐다.
2015년에 André Courrèges의 별세 후 Courrèges를 소유하고 있던 프랑스 기업은 2014년에 ANDAM First Collection Prize를 수상한 Sébastien Meyer&Arnaud Vaillant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하고 브랜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Space Age의 실루엣과 착장방법, 소재 등 과거에 엃매이지 않고 현대적으로 잘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세련되었냐고 한다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이들은 2년 만에 브랜드를 떠났고 잠깐 Yolanda Zobel를 거쳐서 2020년, LOUIS VUITTON과 BALENCIAGA에서 경험을 쌓은 Nicolas Di Felice가 CD를 맡으면서 Courrèges는 완전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Nicolas는 우선 "Reedition Collection"으로 브랜드의 로고가 들어간 현대적인 몇몇 아이템을 고정적으로 발매했다. 이것은 과거의 유산을 반영하면서도 모던하게 일상에서 믹스앤 매치가 가능한 기본형 아이템으로써 브랜드의 유산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제품군과 로고플레이는 유지하며 매 시즌 원단이나 컬러에 살짝의 베리에이션을 주면서 지속적인 브랜드 노출과 소비자 유입을 전략으로 한다. 이것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자주 노출되며 많은 Z세대의 트래픽을 발생시켰다.
또 Runway에서 보여주는 Collection의 방향성이 굉장히 세련됐다. Space Age 패션은 인체를 고려하기보단 인체를 덮는 기하학적인 형태 자체에 집중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미래적이고 독특하게 느껴졌지만 다시 말하면 일상적인 시선에서는 너무 투박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옷들이었다는 단점이 있다.
그동안 Space Age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실패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 실루엣을 그대로 표현하려 해서라고 생각하는데 Nicolas는 이런 기하학적 특징을 의류 패턴과 디테일에 잘 녹이면서도 핏과 실루엣은 현대적이고 2024년에 유행하는 라인으로 풀어냈다. 결국 사람들이 즐겨 입는 옷의 새로운 선택지가 되면서 또 헤리티지가 담긴 재밌는 디테일로 능동적인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했다.
Nicolas의 브랜드 운영에 관한 자세한 가치관은 위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Courrèges는 2023년에 전년대비 두배의 매출을 기록하고 다양한 패션 거점지역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20년에 Pierre Cardin의 별세 후 브랜드를 물려받은 조카Rodrigo Basilicati-Cardin(상속과 관련하여 여러 소송과 잡음은 존재하지만)은 브랜드를 재정비하여 2021년에 "Cosmpocorps3022"라는 쇼를 통해 브랜드의 부활을 알렸다. 우주선을 배경으로 한 세트장에서 Pierre의 유산을 재현한 Space Age의 룩들을 선보였다.
그러나 대중과 평론가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너무 올드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상 쇼의 영상을 보면 영상미, 세트, 조명, 옷 , 모델의 워킹과 포징, 쇼구성 모든 것이 너무 촌스럽다. 브랜드를 지휘하는 Rodrigo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능력이 의심될 정도다.
가장 최근에 전개한 24년 Fall/Winter까지도 이 촌스러운 '재현'은 이어지고 있다. 환경보호를 외치며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Dead Stock(재고)원단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색상부터 질감까지 너무 옛날이다. ESG를 고려하는 것은 좋지만 시장성이 바탕이 되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결국 2024년에 했던 Pierre Cardin의 Runway는 Vogue Runway에 등록되어있지도 않고 주요 매거진들이 아예 다루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처럼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과 그 아이디어를 시대에 맞게 변주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패션은 그 어떤 예술보다 '현재'에 민감한 장르다.
오래된 컬렉션이 현재의 미감과 맞다면
그 가치는 오래된 만큼 더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의 미감과 어긋난다면
오래된 것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Space Age를 품은 비슷한 두 브랜드이지만 Courrèges는 '현재'로 들어왔고 Pierre Cardin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가 문화적, 기술적, 소재적, 미적으로 모두 너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데 얼른 적임자가 CD를 맡아 브랜드를 재구성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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