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대하여

원단과 옷을 규제받는다면?(제2차 세계대전)

bangju 2024. 8. 12. 12:20

 

나도 여러분도 원단을 규제하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

어떤 옷이든 스타일과 가격만 맞으면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원단을 규제한다면, 그리고 지퍼와 단추 등 부자재,

더 나아가 옷 입는 방식까지도 제한한다면?

당장 내일 외출하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그리고 거리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현재와 달리 과거에 원단을 규제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생산성의 부족이다.

변화의 가장 큰 기점은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방적기와 직조기의 개발과 개량이었는데 이전에는 순전히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특정 신분에게만 고급 원단을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었다.

그러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자본주의와 함께 누구든 그 값을 지불한다면 원하는 원단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게 됐다.

 

단, 원단을 규제할 단 하나의 이유인 '전쟁'은 2024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자발적인 원단 규제로는 20세기 후반 동물권 보호 단체의 "I'd Rather Go Naked Than Wear Fur"캠페인과 2017년 GUCCI와 수많은 브랜드들의 "Fur-Free"선언 등 모피와 가죽 사용 금지가 있다.)

 

 

(좌)명나라 신분별 복식, 14~17세기 / (우)사치금지령에 호화로운 옷을 치우는 프랑스 쿠튀리에

과거에 원단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던 시기에는 동시에 신분제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서 고급 원단인 견직물(비단, 실크)의 사용을 제한했다. 또 염료 또한 매우 귀중했기 때문에 원단의 색상에도 제한을 두었다.

명나라의 경우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한족이 건국한 나라로 유교에 따라 신분의 구별이 중요했는데 '황금색'원단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면, 마 등 원단이 아닌 고급 원단의 사용은 금지했다. 그러나 명 후기 무역의 활성화로 낮은 신분의 신흥 부자 세력이 대두되면서 이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고 사대부들은 이를 막기 위해 '사치금지령'을 수차례 내렸다.

 

서양에서도 중세 시대에 상업을 통해 성장한 '부르주아'들이 기존 귀족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Sumptuary Law"라는 사치금지령을 통해 실크, 벨벳, 새틴 브로케이드 등 원단과 실루엣, 디테일 등을 제한하였다. 또 보라색 염료는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에 황제와 교황에게만 허락되었고 이외에도 금색이나 빨간색, 검은색 모두 제약이 있었다.

 

 

비슷한 예시로는 일본 에도 시대의 "킨소레이", 오스만 제국의 "이스라프", 조선 왕조의 "금부령" 등이 있다.

 

 

World War 2,1939~1945

역사상 유례없는 원단과 복식 규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이루어졌다.

 

영국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Clothing Rationing Scheme"정책으로 면, 울, 실크 등 원단의 군수품 이외의 사용을 금지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1941년에 "Utility Scheme"정책으로 단순한 원단 규제를 넘어 산업 전반적인 규제와 더불어 소비도 제한다.

 

 

(1)신문에 나온 트리밍 금지 의류규정, 1942 / (2)의류를 살 수 있는 영국의 쿠폰 배급 정책 / (3)"Make Do and Mend"캠페인, 1943

영국은 원단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원단의 낭비를 막기 위해 주름을 금지하고 주머니와 버튼의 개수도 최소화하였으며 기존의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대신 싱글 브레스티드를 허용하고 정장 바지의 밑단 턴업도 금지했다. 의류 소비 자체도 규제하였는데 모든 영국인에게 1년에 66개의 쿠폰을 지급하고 해당 쿠폰 이외의 방식으로는 의류 구매를 금지했다. 여성용 코트는 14개의 쿠폰이 필요했고 소모품인 스타킹조차 2개의 쿠폰을 필요로 하면서 영국인들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대신 정부에서는 "Make Do and Mend"캠페인을 통해 기존의 의류를 더 오래 사용하고 수선하거나 새롭게 재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억눌린 개성과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했다.

 

 

 

(좌)CC41 Symbol Logo, 1941~1952 / (우)CC41 Utility Wear

영국은 "Utility Scheme"정책에 따라 "Civilian Clothing 1941", 줄여서 CC41이라는 로고로 국가에서 생산한 유니폼을 유통했다. 모든 옷들을 규격화하여 자원절약 기준에 부합하는 의류를 직접 생산했던 것이다.

비록 이것은 대중에게 획일화된 옷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됐지만 영국 정부는 이것이 스타일에 대한 통제보다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신뢰 가능한 최대한의 품질을 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사람들의 스타일이 너무 획일화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는 1942년에 런던 패션디자이너 협회를 창설하고 선도적인 패션디자이너들이 Utility 자원으로 다양한 세련된 의류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좌)Utility Shirt / (우)Utility Frock(Dress)

왼쪽의 Utility Shirt는 가슴 부분에 포켓도 없고 여밈이 아닌 풀오버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원단과 단추를 절약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의 Utility Frock은 화려한 패턴과 주름, 긴 기장 대신 단색의 원단과 군복을 닮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며 허리띠를 통해 허리 부분에 주름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Utility Tayrard Suit

전쟁이 지속되면서 군수품 공장 등 직장을 다니게 된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남성복의 테일러링이 여성복에 적용된 스커트 슈트도 유행했다.

 

 

(좌)Utility Oxford Shoes / (우)Utility Furniture

CC41은 의류뿐만 아니라 잡화 그리고 가구와 생활용품까지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구두는 굽의 높이도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너무 재밌는 것은 이 때 국가의 재정마진(자원절약)을 위해서 진행된 사업이 지금의 SPA브랜드들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파일럿 비즈니스 격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SPA브랜드 전성시대로 2023년부터 명품 판매가 부진하면서 경기침체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24년 현재까지도 SPA브랜드는 견고한 매출과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저렴한 프라이스 조닝으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SPA브랜드의 사업모델은 박리다매인데 단순히 싸게 많이 파는 것에서 더나아가 자체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 및 유통 마진도 최대화하는 것이다.

'CC41'는 애초에 사업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판매량을 제한했을 뿐이지 의류부터 여러 생필품, 홈 가구까지 현대의 ZARA, H&M, MUJI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상징성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놀랍게도 이 "CC41"의류는 빈티지 콜렉터들사이에서 아직도 거래되고 있다.

 

 

 

(좌)Siren Suit / (우)Winston Churchill Wearing a Siren Suit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Siren Suit(공습대피복)을 대중화시켰다. 야간 공습을 받을 때 대피소로 이동하는 데에 기존의 두, 세 피스로 된 겉옷은 불필요했다. 따라서 입기 편한 One-Piece 형식에 벨트로 허리를 조절할 수 있는 보호복이 필요했고 이 옷은 증기시대에 석탄 먼지로부터 보호가 필요했던 보일러공의 의상에서 처칠이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엉덩이 쪽이 패널 형식으로 달려있어 옷을 벗지 않고도 볼일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후에 이런 One-Piece 스타일은 70년대 Glam Rock의 대표의상으로 또 할리우드에서 Tom Cruise의 "Top Gun"속 영화의상으로, Brad Pitt의 일상복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의 L-85 Order, 1942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군수품 자원 확보를 위해 원단 및 의복 규제인 "L-85 Order"가 발표됐는데 군복과 낙하산에 사용되는 면, 울, 나일론 등 사용이 제한되고 Sleeve Cuffs나 주름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옷들의 구체적인 기장과 폭까지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또 지퍼, 버클 등의 금속 부자재 사용이 제한되면서 비금속 고리와 끈을 활용하고 묶을 수 있는 Wrap Skirt와 같은 디자인이 개발되었다.

 

 

(좌)Victory Suit / (우)Women Suit with Pants

특히 미국에서는 이렇게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투피스를 Victory Suit라고 부르면서 L-85 Order에 따르는 것을 국가를 위한 희생과 연대에 참여하는 것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에 연결 지었다. 또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인력이 노동에 투입되면서 그들의 바지 착용이 대중화되고 High-Heel 대신 Loafer와 Lace-Up 등 Flat Shoes를 신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당연히 이러한 국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좌)Zoot Suit / (우)LA "Zoot Suit Riot", 1943

그들은 대부분 청소년으로 재즈와 점프 블루스의 유행과 함께 넓은 폭과 긴 기장, 두툼한 어깨 패드를 가진 화려한 색상의 Zoot Suit를 즐겨 입었는데 멕시코계 미국인들에게서 유래한 이 옷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원단을 규제했던 '전쟁 생산 위원회(WPB)'에게 과도한 원단 사용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유분방하고 넉넉한 실루엣이 특징이었던 Zoot Suit는 오히려 반항과 하위문화의 상징이 된다. 이후 1943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주트 폭동까지 일어나게 되었고 인종차별의 문제와 겹쳐 유색인종을 대변하는 저항의 옷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힙합 룩은 이 Zoot Suit의 핏을 물려받아 저항정신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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