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대하여

19세기에도 남자 패션 인플루언서가 있었다?

bangju 2024. 9. 1. 22:39

 

London Jermyn Street

신사의 나라 영국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남성복 브랜드와 테일러샵들이 모여있는 저먼 스트리트가 있다. 여기에는 한 남성의 동상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바로 "Dandy(댄디)의 창시자"인 Beau Brummell이다. 

 

 

Beau Brummell still lives,
there's a history of that in British men, and that to me is the best.

Tom Ford

 

 

George Bryan Beau Brummell

그의 어릴 적을 얘기하자면 전통적인 귀족 배경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영국 하원의원의 비서였으며 덕분에 중산층의 삶을 영위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당시에 화려한 패션은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Beau는 중산층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의 상류층인 Bon-Ton(Frenchbon-Ton, 유행을 이끄는 패셔너블한 상류층 사회)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는 사회적 우정을 쌓기 위해 웨일스의 왕자가 있는 기병대에 지원하여 친분을 쌓았으며 이후에 군대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향하면서 군대에서의 인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패션 인플루언서의 길을 걷는다.

 

 

France Court Style, 17~18th Century

17세기는 절대왕정이 시작되면서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세기의 화려한 건축물인 베르사유 궁전과 함께 사치스러운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의복 착용에 관한 내용을 법으로 제정하면서 귀족들이 궁정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도록 장려했다. 17~18세기의 미술 양식인 "바로크"의 뜻이 "허세, 지나친 과장"으로 해석되기도 하듯이 미술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화풍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다.

 

당시의 복장은 매우 장식적이고 복잡했다. 특히, 남성복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과장되었었는데 현대에 여성들이 착용하는 스타킹이 사실 중세 유럽 귀족 남성 고유의 패션이었다는 데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남성의 복장은 흰 가루를 뿌린 화려한 가발, 주름 장식이 있는 실크 셔츠, 목을 장식하는 Ruff 또는 Jabot, Knee Breeches or Culottes with Stockings, 자수가 놓인 벨벳 Doublet 과 장식용 벨트인 Baldric까지 매우 화려했다. 

 

 

Drawing of Beau Brummell's Style

Beau는 여기서 "Great Male Renunciation(위대한 남성의 포기)"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의 초석을 닦는다. 바로 다양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포기하고 의류 재단의 작은 차이와 원단의 품질만을 남성복의 고려 요소로 삼는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고 장식 없는 헤어스타일, 부츠와 함께한 긴 바지, 그리고 장식이 적은 코트를 착용하여 과시적이고 퇴폐적인 복장을 거부했다. 이를 통해 그는 남성 신체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단순하지만 우아한 의상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후 1930년에 영국의 심리학자 존 플뤼겔은 "남자들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포기했고 이제부터는 유용할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라며 의류 역사의 주요 전환점으로 이때를 설명했다.

 

 

(좌)Drawing of Beau Brummell's Style Items / (우)Trimming Cravat, Beau Brummell Movie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왜곡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Beau의 스타일이 외관상 세련된 실루엣과 차분한 색상인 것은 맞지만 착용 방식에 있어 여전히 복잡한 구성과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에서 그가 목에 두르고 있는 것은 Cravat라고 하는 목장식인데 기존의 Ruff나 Jabot에 비해 단순하고 자연스러워진 것이 맞지만 Beau는 이 Cravat를 정교하게 묶기 위해 3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복장의 모든 세부 사항을 교묘히 배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목적은 재밌게도 옷에 별로 신경을 안 쓴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ㅋㅋㅋ)

이런 태도는 이탈리아에서는 Sprezzatura 라고 불렸는데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좌)백조 / (우)Jacket's Pocket Square

"백조는 우아해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물 안에서 물갈퀴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물론 사실은 그냥 몸 안의 공기와 깃털 때문에 떠있는 거지만^^;) 이 이야기가 가리키는 게 바로 Sprezzatura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쉬운 것처럼 세련되고 우아하게 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보면서 옷차림도 매우 애쓴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에 미국에서 생겨난 "Cool"이라는 개념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3시간 동안 묶은 Cravat를 무심하게 묶은 것처럼 보이길 원하던 것은 현대에 신사들이 자켓의 왼쪽 가슴 포켓에 넣는 장식용 천 Pocket Square의 무심한 형태와 주름을 잡기 위해 여러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으로 계승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단어인 "꾸안꾸"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자연스러운 모습을 뜻하는데 아직까지도 통하는 스타일 가치관을 당시에 과감하게 추구한 Beau는 정말 대단한 거 같다.

(2010년대는 GUCCI로 대표되는 멕시멀리즘의 시대였는데 그것이 막을 내리면서 "꾸안꾸"가 대두된 것은 "Great Male Renunciation(위대한 남성의 포기)"와 거시적인 흐름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좌)17th Century Coat / (우)18th Century Coat

코트에서 비교해 보면 기존의 레이스와 함께 화려한 자수가 놓이고 금장 버튼이 있던 프랑스식 실크 또는 벨벳 코트는 단순한 디테일의 세련된 핏의 영국식 울 코트로 바뀌었다.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과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도 이러한 프랑스풍의 종말에 이유가 됐다.

 

 

18~19th Century England GentleMen's Style

그렇게 Beau는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그램의 '제니'급 인플루언서로 영국 남성들의 옷 입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Beau는 자신이 원하는 디테일을 얻기 위해 맞춤양복을 원했고 전문화된 여러 재봉사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영국의 테일러링은 발전하게 됐다. 영국의 테일러링 거리인 Savile Row는 세계적인 명성의 테일러링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Brummellism 이라고 불리며 현대에도 너무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Beau가 보기에 너는 너무 패셔너블하다"라고 하는 유머가 있다고 한다.

 

 

 

Karl Lagerfeld

Beau의 영향을 받은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수트주의자는 Chanel과 Fendi 그리고 본인의 브랜드 Karl Lagerfeld의 수장이었던, 지금은 고인이 된 Karl이 있다. 그가 실제로 남성들에게 수트를 입는 것을 유행시키지는 않았지만 수트를 통해 대변되는 그의 모던함과 정교함에 대한 집착, 세련미와 개성은 그가 디자인한 여성복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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